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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 이 세상 나이 든 소녀들에게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본문

책읽는분석가

Book Review || 이 세상 나이 든 소녀들에게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Awesomist 2020. 8. 1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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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모처럼 한가로운 어느날, 집정리를 하다가 2011년 어느 날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남겼던 짧은 글을 발견했다.

 

10대 때보다는 엄마가 보였지만 여전히 엄마의 마음에서는 멀었던 때.


엄마라는 단어의 힘은 참 묘하다.
그녀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면서 묵묵한 감정을 만드는 신파적인 힘이 있다. 

그리고 지금껏 미루게 만든 게으름을 한순간에 내가 글을 다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까지 만들 거란건
몰랐다, 정말 몰랐다. 


글이라는 것이 여전히 나에게는 무겁지만
과거의 내가 남긴 기록에 지금의 나를 덧붙여서 조금씩 조금씩 써나가기 보기로 했다.

 

 


이 세상 나이 든 소녀들에게
 

주부 박소녀는 아이들과 남편 그리고 시댁 식구들의 삶에 가려진 인생이었다. 늘 누군가의 그늘에서 지냈다.

내 남편, 내 아이의 뒤, 다른 식구들의 지지대가 돼주는 나무 노릇만 하던 그녀.

 

뇌졸중으로 머리가 쪼개질 것만 같은 아픔을 겪고 있어도 속 시원하게 신음소리 밖으로 내보이지 못한 삶. 박소녀라는 이름 세자가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는 그 문장,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삶이 한 '본체'으로서 한 '여자'로서의 삶이 많이 지워진 삶을 살았다는 것을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박소녀씨의 존재는 ㅡ그녀의 본명을 부르는 것이 이미 튀튀해진 그녀의 삶을 뒤늦게나마 존중해주는 것이 작은 예의일 것만 같다ㅡ그전까지 그녀의 집안 식구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가족들은 그녀의 부재 앞에서야 그녀의 소중함과 그녀의 삶이 얼마나 고단했을까 하는 것을 인식한다.

 



모성의 따뜻함이라는 말,

이게 참 모진 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처음하게 됐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따뜻한 온도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는 것이 당연했고 그 이면의 외로움은 볼 새가 없었다.

'엄마'라는 위치는 그 단어 자체만으로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답지만, 그녀가 숭고할수록 그 뒤에 묵직한 짐이 따라온다.

 


수많은 오늘을 사는 어머니들처럼 박소녀씨 역시 여자가 아닌 '엄마'였다.
어설프게 전통적인 가부장제도와 현대의 여성의 사회진출과 개인주의가 뒤엉킨 지금 이 과도기에,
한국 중장년의 '어머니1'ㅡ설령 그녀가 일을 하는 노동자였을지라도ㅡ이었다.

여전히 모성과 내조라는 보이지 않은 틀과 둘 사이 묘한 매듭 속에서 가족들의 뒷바라지하느라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러한 어머니의 모습이 바르고 당연하게 느껴야 하는 일종의 母種의 의무인 것일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하다.

여자로서 자신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바라면서 이룬 사랑의 결실(결혼 그리고 아이)이었을텐데,

그 결실이라는 것이 부여해준 '어머니'라는 위치는 진정 그때 그녀가 꿈꿨던 '행복과 안락의 삶'과 얼마나 닮아있을까?

 


이 글을 보는 당신이 박소녀씨를 보면서 자꾸 겹치는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에게서 그런 행복과 안락의 여성의 삶이 쉽게 떠오른다면 다행이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효녀는 아니었던 편이라 그런가 미안함만 자꾸 남는다.

부끄럽고 뜨끔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엄마의 삶을 ‘희생’적인 삶을 떠올리면서 희생임을 인식 못하고 단순히 사랑의 부산물이라고만 떠올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중

 

딱 10년 뒤, 내 주변에 하나 둘 엄마가 되기 시작한 즈음 나타난 '김지영씨'
그리고 할머니가 되었거나 이모할머니가 된 주변의 '박소녀씨'

 

   “엄만 그걸 어떻게 매일매일 감당해냈을까? 엄마가 부엌을 좋아했을 것 같지가 않아.
    너는 여동생의 말을 듣고 있다가 무연해졌다. 너는 엄마와 부엌을 따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엄마는 부엌이었고 부엌은 엄마였다.”

 

10년이 훌쩍 흐른 지금 다시 읽어보는 「엄마는 부탁해」 속의 한 문장.

왜 지영이가 영화에서 읊조린 대사마냥 들렸을까

 

우연히 옛 글을 읽고 이후 10년을 지내오면서 또 그 사이에 미안한 일은 왜 여전히 많을까

이전보단 덜 하지만 '우리 집 박소녀씨'는 우리 손은 답답하다는 핑계로 누구보다 바쁘고 누구보다 부엌에서 가깝다. 

 

 


조금 더 자주 사랑과 존경을 담은 감사표현을 그녀에게 건네야 할 것 같다.

버텨줘서 고맙고 조금 더 내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서 고맙다고.

 

 

다음 10년까지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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